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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따라 햇살이 화창하네.

얼마 전에 비오는 날 아무 생각없는 꼬마 공주님이 창문 열어놨다가

비 들이치는 바람에 아끼고 아끼는 고서가 다섯 권이나 흠뻑 젖어서 속상했었는데.

오늘같은 날은 이 우중충한 탑 꼭대기방에도 환기를 시켜줘야지.

 

나는 진(JIN). 바람의 정령이자 이 탑의 수호자야.  

내가 지키고 있는 이 탑의 이름은 '도서탑(Tower of Books)'이라고 해.

세상의 모든 책이 다 이 곳에 있지! 실제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,

이 탑의 모든 책을 전부 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니까 그냥 그런가보다 하고 있어.

난 그저 책을 좋아하니까 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을 뿐인데,

오래 눌러앉아있다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이 탑의 수호자 비슷한 게 되어있지 뭐야.

딱히 싫지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어.

 

응? 탑에 얼마나 있었냐고? 으음, 너희들 기준으로 하자면 한 천오백년쯤 됐나?

너희들이 말하는 '시간'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.

사실 바람이 시간 따지고 부는 건 아니잖아?

 

 

심심했겠다고? 글쎄... 책만 읽고 지내도 시간은 잘만 가던걸.

가끔 책들이 상하지 않게 신선한 바람을 불어주기도 하고,

구석에 몰래 숨어들어온 물의 정령들 내쫓기도 하고.

불의 정령들은 자기들이 위험하다는 걸 알아서 굳이 말 안해도 자기들이 조심하는데,

물의 정령들은 조금 젖으면 어떠냐며 되레 화를 낸다니까? 정말 속상해!

 

한바퀴 둘러보고 나니까, 대충 환기가 된 것 같네.

자, 그럼 슬슬 아래로 내려가볼까...

 

[달칵, 달칵]

 

...어라?

왜 문이 안 열리지?

 

[달칵달칵달칵달칵]

 

어라? 어라라라?

이게 무슨 일이지? 갑자기 왜 문이 다 잠겨버린 거야?

지금 내가 있는 곳은 탑 꼭대기고, 여기에 정령인 나를 제외하고

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명 뿐인데- 그리고 그 사람은.....

 

충분히 사고를 칠 만한 사람이지. 암.

좋아, 이 사태의 원인을 잡으러 가자.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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